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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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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學硏究』 간행에 부쳐

무릇 전쟁도 장사도 현실 인간끼리 만나 서로 상대하여 죽이고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제 장치 하나만 누르면 수많은 인명과 시설이 한꺼번에 상실되고, 혹은 가상현실이 현실보다 더한 실감으로 등장하여 불가항력으로 거기 몰입케 하고 만다. 기술과 능률 만능 속에서 인간은 참으로 왜소해지고 말았다.

그러한 현상과 달리, 그러나 인간의 속마음은 얼마나 허허로운 터인가. “흰 구름 다하여 끊어진 곳, 청산은 거기 있는데, 한 평생 정진 끝에 청산에 올라보니, 그 너머 다른 나그네는 다시 길을 찾아가고 있더라.”(白雲斷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 인간이란 존재는 각기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거기에 대한 해석은 또 얼마나들 다양한 터인가. 전쟁놀이에서 이겼다 하여, 혹은 생활 형편이 좀 나아졌다 하여, 결코 그 마음이 족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평생 도를 닦고서도 오히려 허허로움은 가시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란 존재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명의 조작은 인간이 오래 가꾸어 온 공통의 논의들마저 무력화시켜 놓고 말았다. 그것은 개별 인간을 직접 상대하고 그 욕망과 향락을 선동하여 인간 본질에 값하는 공동체와 개인의 규범과 의미들마저 뒤흘들어 놓았다. 안팎으로 가치를 상실해 가는 존재, 이것이 현재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삶은 과연 요지경 이상의 현실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의미는 혹 새로운 논의를 통하여 다른 공통의 것과도 연결될 수가 있는 것인가. 그 언저리를 다루는 人文學은 오늘날에도 과연 존속할만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1996년 8월 31일
인문학연구소 초대소장 金泰永